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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양 핸드백으로 세계인을 매혹시키다 (톱클래스 2007.10)

10.01.2007

한국 문양 핸드백으로 세계인을 매혹시키다 (톱클래스 2007.10)

한국 문양 핸드백으로 세계인을 매혹시키다
가방 전문 브랜드‘스토리’ 조명희 실장
글 : 최선희 기자
 
조선일보 톱클래스 2007년 10월호
 
우리나라보다 유럽에서 더 유명한 가방 디자이너가 있다. 지난 2002년 그가 선보인 가방 전문 브랜드 ‘스토리(Stori)’는 이미 유럽 시장에서 인기 브랜드로 자리를 굳혔다. 영국 리버티 백화점에서는 3년 연속 가방 부문 ‘베스트 상품’에 올랐고, 독일의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에서도 당당히 ‘명품 존’에 입점해 세계적인 명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토리는 프랑스ㆍ영국ㆍ독일ㆍ스페인ㆍ스웨덴 등 유럽 여러 나라는 물론 미국ㆍ중동ㆍ남아프리카까지, 전 세계 20개국에 진출해 모두 40여 개의 매장에서 판매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년 전, 브랜드를 알리고 고객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한 ‘플래그 숍’으로 서울 삼청동에 문을 열었다. 

이처럼 가방 하나로 전 세계인들을 사로잡은 주인공은 바로 조명희 실장(43세). 삼청동 매장에서 만난 그는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었지만 검은색 의상에 양 갈래로 땋은 머리, 빨간 입술 모양의 독특한 목걸이로 포인트를 준 멋스러운 차림새였다. 

스토리를 국내가 아닌 유럽 시장에서 먼저 론칭한 이유를 묻자 그는 “우리나라는 명품과 브랜드를 너무 따져 새로운 브랜드가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며, “반면 유럽 소비자들은 이름이 안 알려졌더라도 독창적인 디자인이라면 쉽게 반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유럽으로 진출한 것은 10년 전.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그는 액세서리 디자인을 하던 언니의 권유로 가방 디자인에 뛰어들었다. 이후 신원, 이신우 컬렉션 등을 거치며 10년 경력의 베테랑 디자이너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는 안정 대신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영국의 유명한 예술대학인 세인트 마틴으로 늦깎이 유학을 떠난 것. 서른셋의 나이에, 안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는 그에게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다시 생각하라”며 유학을 말렸다.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어요.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서 제 나름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시도해 보고 싶은 욕구가 강했어요. 그런데 조직에 매여 있으니 그게 쉽지 않았죠. 또, 어쩔 수 없이 외국 디자인을 카피해 내놓아야 하는 현실도 디자이너로서 참 견딜 수 없는 부분이었어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 그런 마음으로 유학을 결심했지요.”

1000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입학한 세인트 마틴에서 그는 의상 디자인을 공부했다. 서양 패션의 흐름을 알고 싶어 선택한 전공이었지만 처음 한동안은 서툰 영어와 빡빡한 교과 과정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만큼 더 열심히 공부했고, 마침내 졸업 무렵에는 그가 제출한 졸업 작품이 WGSN((Worth Global Style Network)으로부터 ‘올해의 우수학생작’으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외국인으로는 드물게 우수한 성적으로 세인트 마틴을 졸업한 그는 졸업과 함께 자신의 전문 분야인 가방 디자이너로 복귀, 본격적으로 유럽에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졸업 이듬해인 2002년부터 어지간해서는 입성조차 어렵다는 ‘프리미에르 클라쎄(Premiere Classe)’, ‘디자이너 앤 에이전트’등의 유명 패션 전시회에 연달아 참가 자격을 얻으면서 ‘스토리’라는 브랜드를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작품들은 ‘동양과 서양이 절묘하게 섞인 아름다움’이라는 패션계의 찬사를 받으며 일약 전시회의 스타로 떠올랐다. 물론 그것이 곧바로 주문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세계 유수의 백화점 바이어들에게 ‘스토리’는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할 신생 브랜드였던 것. 그는 제품 소개서를 만들고, 샘플을 준비해 직접 홍보에 나섰다. 특히 유럽에서 자리 잡기 위한 전초기지로 리버티 백화점을 집중 공략했다. 

“매 시즌 신제품에 관한 자료를 정성껏 만들어 발송했지만 한 번도 답변을 받지 못했어요. 아예 뜯어 보지도 않은 거죠. 그래서 다른 방법을 썼어요. 가방을 메고 손님인 척하고 가방 매장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더니 어떤 직원이 다가와 ‘이 가방 정말 예쁘다. 어디서 샀느냐’고 묻는 거예요. 너무 반가워서 ‘사실은 내가 이 가방 디자이너’라고 신분을 밝히고 우리 제품 사진을 모두 보여줬어요.”

가방을 본 그 직원은 뜻밖에도 “이런 제품이라면 아주 잘 팔릴 것 같다”고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백화점 쪽에서 연락이 왔다. 그날 만난 매장 직원이 담당 바이어에게 ‘스토리’를 강력 추천했던 것. 그가 들고 온, 커다란 슈트케이스 두 개에 가득 담긴 가방들을 꼼꼼히 살펴본 담당자는 그자리에서 입점을 허락했다. 유럽 시장의 첫 관문이 열린 순간이었다. 이후 그의 전시회를 보고 관심을 가진 바이어들로부터 주문이 잇달았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의 대형 백화점과 멀티숍에 매장이 하나 둘 생기면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영국에서 디자인, 한국에서 생산하는 ‘다국적 가방’

현재 런던에 작업실을 두고 있는 그는 기획과 디자인은 런던에서, 생산은 한국에서 한다. 주요 소재인 가죽은 이탈리아에서 구입하고, 전시회는 주로 파리에서 여는 다국적(?) 공정. 그럼에도 스토리의 제품들은 예외 없이 ‘한국산’으로 표기된다. 

“물론 세계 패션계에서 한국 디자이너, 한국산이라는 것은 장점이기보다는 마이너스 요인이 될 때가 많아요. 일본의 이세탄백화점에서 계속 입점 요청을 해오고 있는데, 안 들어가는 이유가 한국산이 아닌, ‘영국산’으로 표기해 달라는 조건을 내걸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야 팔린다는 거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실제로 한국에서 생산하고 있는 제품을 영국산으로 바꾸는 것도 맞지 않는 일이고, 또 스토리를 통해 한국 제품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계기를 만들고 싶거든요.”


그는 제품에 한국적인 요소들을 많이 차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비녀나 문갑의 고리가 가방의 잠금장치를 대신하기도 하고, 고가구에 쓰이는 무지개 빛깔 자개로 색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스토리의 한글 이니셜인 ‘ㅅ ㅌ ㄹ’가 모든 가방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가 하면, 복주머니 모양의 가방도 재미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자주 등장하는 호랑이 문양. 근엄한 호랑이가 아닌, 고양이에 가까운 아기 호랑이라 외국 바이어들에게 매번 ‘캣이 아닌 타이거’라는 설명을 달아 주어야 할 정도다. 

“엄마가 저를 가졌을 때 아기호랑이 두 마리가 바구니에 들어가는 태몽을 꾸셨대요. 그게 재미있어서 스토리의 마스코트로 삼았어요. 언니를 가졌을 때도 똑같은 꿈을 꾸셨다는데, 저희 둘이 지금 같이 일하고 있으니 생각할수록 참 신기해요.”

그의 언니는 가방 및 액세서리 디자인 프로모션 업체인 가인엔터프라이즈의 대표 조명숙 씨. 그를 가방 디자이너의 길로 인도한 장본인으로 현재 ‘스토리’ 제품의 생산을 총괄하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남동생도 중국 공장 책임자로 합류함으로써 스토리는 이제 3남매가 함께 꾸려 가는 ‘가족 브랜드’가 되었다. 그는 “각자 전문 분야를 나누어 시너지 효과가 크다”며, “앞으로 스토리를 샤넬 같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키우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자꾸 봐도 질리지 않고, 세월이 지나도 그 아름다움이 변하지 않는 진정한 명품을 만들고 싶어요. 브랜드 하나가 안착하는 것이 단시간에 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꾸준히 노력할 거예요. 조금씩 조금씩 발전을 거듭해 100년 후쯤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그런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 이창주topclass.chosun.com/board/view.asp?tnu=200710100005&catecod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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