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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희의 핸드백이야기 (3) - 잠근다는 것과 연다는 것 (헤렌 2014.01)

01.01.2014

조명희의 핸드백이야기 (3) - 잠근다는 것과 연다는 것 (헤렌 2014.01)

조명희의 핸드백이야기 (3)
 
잠근다는 것과 연다는 것 -견우와 직녀백
 
HEREN 2014년 1월호
 
조명희 (Stori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한국의 전통 모티브와 현대적 트렌드를 접목한 핸드백을 디자인하는 
스토리(Stori)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헤렌>과 함께 매달 전국 곳곳에 숨어있는 
한국의 전통 모티브를 찾아 소개하고 있다.

 한국 쇳대(자물쇠,쇠통)의 역사와 기술, 상징은 핸드백을 통해 다양한 디자인과 생각으로 그려질 수 있다. ‘말발굽’을 제조하던 회사에서 세계적인 핸드백 브랜드로 성장한 에르메스의 ‘열쇠’를 특화한 켈리백은 천 만원을 넘지만 그 인기가 대단하다. 한국의 ‘장석과 쇳대’는 한국 패션과 디자인이 주목해야할 훌륭한 원형이다. 그것을 제대로 부활시켜 명품화한다면 한국의 핸드백도 에르메스, 샤넬보다 더 아름답고 훌륭한 핸드백이 될 것이다.
 
전남 해남 돌고개에 가면 닭과 오리볶음으로 유명한 통닭집들이 모여 있는데, 그 옆에 희한한 주택 하나가 눈에 띈다. 벽에 온통 큼지막한 장석들로 치장하고 있어 옛날 장군들이 입던 갑옷 같기도 하고 당골래 무당집 같기도 하다. 이집은 유석종(75) 두석장(豆錫匠) 장인의 집으로 쇠냄새와 쇳기운이 가득하다. 두석이란 전통 목가구나 궁궐, 사찰, 한옥 등에 붙이는 금속제 장석으로, 전통가구의 경첩이나 금속문양, 손잡이, 자물쇠 등도 장석이다. 장석은 나무가 뒤틀리는 것을 막고, 이음새를 고정하거나 문을 여닫기 위한 실용성과 함께, 문양과 상징이 디자인으로서 중요하다. 유석종 선생은 전국 170여개 사찰과 한옥의 장석을 도맡았을 정도로 솜씨를 자랑하는데, 서울 경국사 대웅보전의 동 장석, 해남 녹우당 대문 장석, 대흥사 백화암의 철장석, 미황사 대웅보전 등의 장석이 대표작이다. "아버지도 장석을 만드셨는데 당시에는 성냥쟁이라고 괄시가 대단해 성냥간(대장간)에 발도 못 붙이게 했었죠.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운명처럼 열여덟이 되자 나도 망치를 들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유석종 선생은 2대째 두석장으로 업을 삼아왔지만 지금은 후계자가 없음을 몹시 안타까워 한다. 게다가 요새는 몸이 아파서 장석을 많이 만들지도 못한다. 대장간에는 화덕, 정, 줄 등의 백 여 가지의 연장과 장석, 경첩, 돌쩌귀, 앞바탕, 쇳대들이 장인의 인고의 세월과 열정, 아쉬움의 체취를 품은 채 세월의 흔적으로 켜켜이 쌓여 있다.
 
해남의 땅끝마을 가까운 곳에 미황사(美黃寺)가 있다. 남도의 금강산으로 불릴만큼 아름다운 달마산의 바위절벽의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휘감은 곳에 자리잡은 미황사에서 바라보는 남녘 겨울바다의 석양은 푸근하기 그지없다. 이 따스함은 아름다웠지만 자못 애틋한 한국 여인네들의 지난한 삶을 떠올리게 한다. “곳간의 쇳대는 잘 잠갔는지 한번 더 보고 와라.” 평생을 밭에서 호미질했던 할머니가 생명처럼 귀하게 간수했던 것이 ‘8자’처럼 생기고 아랫배가 불룩 튀어나온 모양의 쇳대(자물쇠,쇠통)이었다. 곳간에는 논과 밭에서 거둬들인 쌀, 보리, 콩, 녹두, 팥, 고구마, 쌀겨 등의 온갖 식량이 보관돼있었다. 아침저녁으로 곳간 쇳대를 열어 곡식을 퍼와서 정지(부엌)에서 밥을 짓는 일은 할머니의 유일하고도 막중한 권력이자 책임이었다. 사람들과 소와 돼지와 닭들이 먹을 곡식의 운용은 바로 한국 여인네들의 ‘쇳대’를 통해 이뤄졌다.
 
미황사 대웅전의 문들에도 잠금과 엶은 존재한다. 쇳대는 몸통과 잠금쇠, 열쇠로 구성되는 폐쇄형과 절과 한옥의 창살문에 달린 동그란 걸쇠 모양의 개방형으로 나뉜다. 열쇠(쇳대,자물쇠)는 무엇인가? 열쇠는 방문, 감옥, 금고, 가방 등의 갖가지 형태로 무엇인가를 보관하거나, 감추거나, 구속하려는 의지의 산물이다. 가방에서도 쇳대는 화룡점정처럼 디자인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장식 포인트’가 된다.
 
스토리 가방에는 나비 장식에 비녀를 응용한 ‘쇳대백’이 있다. 나비는 자유와 평화를 뜻하고, 비녀는 옛 여인네들의 구속과 정갈함을 뜻한다. 이것을 두 개의 장석으로 쇠줄로 연결해 비녀 꽂이를 달았는데 ‘견우와 직녀백’으로 이름 붙였다. 잠금과 열림은 남녀간의 사랑과 만남과 이별로도 풀이된다. 가방은 나를 간직하고 나르고 숨기거나 표현하는 상징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클로드 카프만은 “당신의 가방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라고 75명의 여자들에게 물었고 그것을 책으로 썼다. “내 가방은 ‘개인적인’ 것이고, 그 안을 뒤지는 건 금지예요. 내 가방 깊숙이 감춰진 부분은 내 여성성과 내 인격, 그리고 연약한 내면의 일부라고도 생각해요.” “가방 없이는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요. 가방이 없으면 저는 벌거벗고 텅 빈 느낌이 들어요. 거의 영혼이 없는 것과 같아요.” “내 가방은 오래된 사랑,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자 내가 나에게 바친 찬사예요.” 이렇듯 여자들에게 가방은 그녀들의 분신이자 상징이며, 세상을 향한 지극히 개성적인 미디어로서 외침이다. 이때 ‘장석과 자물쇠’는 가방의 얼굴이자 강렬하고도 매혹적인 눈빛이다. 그 얼굴과 눈빛에 생명, 아름다움, 스토리를 불어넣으려고 나는 끊임없이 노력한다.
 
writing 조명희 editor 윤정은 photographer 안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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