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 News 2020

닥나무의 꿈-한지 (헤렌 2014.04)

04.01.2014

닥나무의 꿈-한지 (헤렌 2014.04)

닥나무의 꿈 한지 
(헤렌 2014.04)

스토리(Stori)에는 한지로 만든 두 개의 특별한 가방이 있다. 오색 한지가방과 백색 한지가방이 그것으로 모두 2012년 프랑스 메종오브제(maison & object paris)에 출품했던  작품들이다. 당시도 그랬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한지의 화려한 색깔과 조화에 감탄하는 한편, 닥나무 껍질이 그대로 느껴지는 촉감에 매혹되곤 한다. 그리고 항상 이런 질문이 뒤따라온다. “한지로 만들었는데 혹시 찢어지거나 물에 젖지는 않을까요?” 한지는 닥나무 껍질로 만들기 때문에 본래부터 단단하다. 또한 한지는 물에 젖었다가도 마르면 형태가 그대로 보존되는 특징이 있다. 여기에 종이를 비벼 말아서 형태를 완성하는 지승공예 기법을 접목시키면 더욱 내구성이 높아진다. 다시말해 가방으로도 적합한 소재다. 

한지가 생산되는 강원도 원주를 방문했다. 원주는 한지테마파크를 조성하고 원주한지축제를 개최하면서 한지의 새로운 메카로 부각되고 있다. 원주 우산동에 가면 4대째 한지 가업을 잇고 있는 장응렬 한지장의 작은 공장이 눈에 띈다. 공장 앞에는 닥나무 껍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약간은 비릿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정신을 맑게 해준다. 한지재료인 닥나무는 3~4m까지 자라는데 3년생이 종이 만들기에 가장 적합하다. 닥나무는 가을에 베어서 껍질을 벗기고, 솥에 넣어 찌고, 다시 물에 불리고, 껍질의 흑피를 벗기고, 절구로 곱게 찧는다. 여기에 물과 닥풀을 넣어 골고루 섞으면 말그대로 ‘한지물풀’이 된다. 여기에 염색제를 섞어 다양한 색깔들을 만든다. 이것을 대나무발로 된 뜰채로 한 장 한 짱 떠내서(종이뜨기) 말린 후 다시 골고루 두드리고 다듬으면(도침하기) 비로소 천 년을 간다는 한지가 태어난다. (국보 제12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폭8*길이620cm)은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로 추정된다. 751년 불국사가 창건될 당시에 석가탑 안에 넣어졌으니 1260여년의 세월을 견뎌낸 것이다.) 한지는 빨강, 황토색, 연두색, 밤색, 쪽빛, 코발트색 등 온갖 다양한 색깔 표현이 가능한데, 원주에서만 250여 종의 색한지가 생산되고 있다.

국산 닥나무로 만든 한지는 옆으로 찢었을 때 견디는 힘(인열강도)도 좋고, 위아래로 찢었을 때 견디는 힘(인장강도)도 좋아 한지가방의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이런 한지를 다시 2㎝ 정도로 길게 잘라 손으로 말고 꼬아서 씨줄과 날줄로 엮는 지승공예는 한지를 더욱 질긴 소재로 탈바꿈시켜 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지승공예 전문가인 최영준 장인은 시할아버지셨던 고 김영복 한지장인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았는데 그 솜씨가 뛰어나 젊은 30대에 무형문화재가 된 분이다. 최영준 장인은 이미 지승기법으로 한지가방을 여러 개 만들었는데 손잡이를 따로 이어붙인 것이 아니라 몸체부터 손잡이까지 한 몸통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한지가방은 대패로 켠 나무 표면을 만질 때와 같이 미세하게 거친 듯 부드러운 촉감을 선사할뿐 아니라,  따뜻하고 온화한 자연의 느낌으로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준다. 이런 지승공예 작품 위에 예닐곱 차례 옻칠을 하면 그 단단함은 상상 이상이 되는데, 아무리 집어 던져도 깨지거나 금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옻칠이 된 한지 밥그릇, 컵, 요강 등 생활 용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

최근 해외 전시회에 가서 보면 종이로 만든 조명등 갓은 평범한 지경이고, 종이로 만든 의자에 종이로 만든 작은 집까지 볼 수 있다. 2월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한지소재 글로벌비즈니스 세미나’에서 영국의 소재 디자이너인 크리스 레프테리는 이렇게 한지를 진단했다. “한지는 항균력이 강하고, 탄력성이 높고, 빛의 투과력이 좋고, 친환경적입니다. 물안경이나 안경테, 컵으로 만들 수 있어서 미니멀리즘과 잘 어울리는 소재입니다. 다만 색한지의 경우 세계 트렌드에 맞는 색깔의 코드를 파악하면서 생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지(韓紙)는 일본 화지(和紙), 중국 선지(宣紙)보다 품질에서 세계 최고다. 하지만 상품개발, 산업화, 브랜드화에선 일본의 화지에 상당히 뒤쳐져 있다. 한지 소재를 보다 전문적으로 연구 개발하고, 제조 기술을 발전시키고,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결합해 실용화하고 산업화한다면 한지의 새로운 르네상스가 화려하게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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